트로이 전쟁이 10년째로 접어들었지만, 이야기는 치열한 전투가 아니라 그리스군을 덮친 역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갈등이 드러납니다. 전쟁의 승패보다 먼저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것은 두 영웅의 분노와 자존심이었습니다.

사제의 저주
그리스군 진영에 아폴론 신전의 사제 크뤼세스가 찾아옵니다. 딸 크뤼세이스를 돌려받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값을 들고 와,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에게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다른 장수들은 몸값을 받고 딸을 돌려주자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아가멤논만은 사제를 모질게 쫓아냅니다. 다시 마주치면 지팡이도 화관도 그를 지켜주지 못할 거라 겁을 주며, 딸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곁에 둘 것이라 못박았습니다.
크뤼세스는 겁에 질려 바닷가를 따라 아무 말 없이 걸어가, 아폴론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아폴론은 노기 서린 화살을 쏟아부었고, 아흐레 동안 역병이 진영을 휩쓸며 시신을 태우는 불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
열흘째 되는 날, 아킬레우스가 병사들을 회의장으로 소집합니다. 예언자 칼카스는 아가멤논의 눈치를 보면서도 용기를 내어, 역병의 원인이 그가 크뤼세스를 업신여긴 데 있다고 밝힙니다. 아가멤논은 크게 분노하지만 결국 크뤼세이스를 돌려주기로 하고, 대신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가져가겠다고 선언합니다.
격분한 아킬레우스가 칼을 뽑으려는 순간, 아테나가 나타나 그를 제지합니다. 아킬레우스는 가까스로 칼을 거두지만, 아가멤논을 향해 “탐욕도 가장 많은 분”이라 쏘아붙이며 더는 그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결국 전령들이 브리세이스를 데려가고, 아킬레우스는 전투에서 물러납니다.
이름과의 씨름
처음 1권을 읽을 때 가장 애먹었던 건 다름 아닌 이름이었습니다.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크뤼세스, 크뤼세이스, 브리세이스 등 그리스식 이름들이 계속 헷갈렸습니다. 스터디 모임에서 돌아가며 낭독할 때마다 이름을 틀려서 다시 읽곤 했습니다.
특히 크뤼세스와 크뤼세이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처럼 앞글자나 소리가 비슷한 이름들은 몇 번을 다시 봐도 헷갈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진지하게 헤맸습니다. 아마 《일리아스》를 처음 펼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에게 하소연하다
브리세이스를 빼앗긴 아킬레우스는 동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바닷가에 앉아 눈물을 흘립니다.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가 물결 위로 솟구쳐 올라 아들 곁에 앉아 사연을 묻고, 아킬레우스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하며 그리스군이 자신 없이 고전하게 해달라고 제우스에게 청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테티스는 올림포스로 올라가 제우스의 무릎을 붙잡고 턱을 쥐며 애원합니다. "제 아들의 명예를 부디 세워주소서." 제우스는 헤라와의 불화를 걱정하며 한참을 침묵하지만, 결국 검푸른 눈썹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여 승낙합니다.
신들도 다투고 화해하고
헤라는 남편의 은밀한 계획을 눈치채고 날 선 말로 따져 묻습니다. 제우스가 언성을 높이자 헤라는 겁을 먹고 자리에 앉아 마음을 달랩니다.
천상의 신들 사이에도 냉랭한 기운이 감돌자 아들 헤파이스토스는 인간 때문에 신들이 다투는 건 망측한 일이라며 어머니를 위로하고, 신들에게 넥타르를 따라줍니다. 다리를 저는 그가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모습에 신들 사이에서 웃음보가 터져 나오고, 그렇게 그들은 해가 저물 때까지 잔치를 벌입니다. 인간 세계의 갈등과 신들의 다툼과 화해가 나란히 놓이는 구성이 인상 깊었습니다.
상대의 절실함을 외면한다는 것
1권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아가멤논의 태도였습니다. 사제는 딸을 살리기 위해 몸값까지 들고 정중히 찾아왔는데, 아가멤논은 그 정성을 외면하고 화부터 냈습니다.
오만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상대가 얼마나 절실한지 헤아리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판단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작은 무시가 역병을 부르고, 결국 전쟁의 판도까지 흔드는 걸 보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하나가 얼마나 멀리까지 번지는지 새삼 생각하게 됐습니다.
1권을 다시 읽고
《일리아스》1권만으로도 인간의 자존심과 분노, 신들의 개입이 얼마나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인간의 세계를 넘어 신들의 뜻까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스터디 때 미처 살피지 못했던 장면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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