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일리아스》 13권은 제우스가 잠시 트로이아에서 눈을 돌리는 순간,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은밀히 개입하며 시작된다. 신들의 균형이 흔들리는 이 장면부터, 크레테의 왕 이도메네우스가 활약하는 순간까지를 이번 편에서 다룬다.

제우스가 돌린 시선
제우스는 트로이아인들과 헥토르를 아카이아인들의 배 쪽으로 몰아붙인 뒤, 그들이 배들 곁에서 고통을 떠안도록 내버려 둔 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는 트라케인과 뮈시아인, 힙페몰고스인, 그리고 가장 올곧다는 아비오스인들의 땅을 내려다볼 뿐 트로이아에는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는다. 어떤 신도 트로이아인이나 다나오스인을 도우러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포세이돈이 트라케의 사모스산 꼭대기에 앉아 전쟁을 지켜본다. 그곳에서는 이다산과 프리아모스의 도시, 아카이아인들의 배들까지 모두 보였다. 포세이돈은 아카이아인들이 제압되는 모습을 보고 분개하며 제우스에게 격노한다.
포세이돈, 바다에서 솟아오르다
분노한 포세이돈은 험한 산에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아이가이로 향한다. 그곳 바다 깊은 곳에는 황금으로 찬란하고 영원히 쇠락하지 않는 그의 궁전이 있었다.
포세이돈은 황금 갈기를 휘날리는 청동 발굽의 말들을 전차에 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뒤 채찍을 손에 쥐고 파도 위로 나아간다.
바다 밑 괴물들은 주인을 알아보고 솟아 나와 뛰놀았고, 바다는 기쁨에 겨워 둘로 갈라졌다. 말들이 가볍게 내달린 탓에 청동 차축에는 물기 한 점 묻지 않았다. 그는 테네도스와 임브로스 사이 깊은 바다 동굴에 이르러 말들을 세우고 암브로시아를 먹인 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아카이아인들의 진영으로 향한다.
정체를 숨긴 신, 두 아이아스를 북돋우다
진영에 도착한 포세이돈은 예언자 칼카스의 목소리와 모습을 빌려 몸부림치며 버티던 두 아이아스에게 다가간다. 그는 두 사람이야말로 아카이아군을 구해낼 이들이니 얼어붙는 패주가 아니라 투지를 떠올리라고 격려한다. 이어 지팡이로 두 사람을 내리쳐 기운을 불어넣은 뒤 매처럼 날아올라 사라진다.
오일레우스의 아들 아이아스는 먼저 그가 신이었음을 알아채고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에게 알린다. 새점을 치는 칼카스가 아니었으며, 떠나가는 발걸음과 종아리의 움직임만으로도 신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아이아스는 가슴속 기백이 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헥토르에 맞서 함께 버티기로 한다.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 용기를 논하다
포세이돈은 아이톨리아인들의 왕 토아스의 모습으로 이도메네우스에게 다가가, 트로이아를 무너뜨리겠다던 아카이아인들의 자랑은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 이도메네우스는 누구도 비겁하게 물러선 것이 아니라며, 이 모든 일이 아카이아인들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채 이름 없이 죽게 하려는 제우스의 뜻인 듯하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평소 사람들을 독려해온 토아스에게 지금도 그 일을 이어가 달라고 말한다.
새 무기를 챙기던 이도메네우스는 부러진 창을 바꾸러 온 메리오네스와 마주친다. 그는 막사에 트로이아군에게서 빼앗은 창 스무 자루가 있다고 말한다. 이어 두 사람은 용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도메네우스는 매복이야말로 비겁한 자와 용감한 자의 본성이 드러나는 자리라고 말한다.
이도메네우스, 오트뤼오네우스와 아시오스를 쓰러뜨리다
싸움터에 이른 이도메네우스는 먼저 오트뤼오네우스를 상대한다. 그는 프리아모스의 딸들 중 가장 아름다운 캇산드라를 아내로 얻기 위해, 구혼 선물 대신 아카이아인들을 트로이아에서 몰아내겠다고 약속하고 참전한 인물이었다.
이도메네우스는 큰 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를 창으로 맞혀 배 한복판을 꿰뚫는다. 오트뤼오네우스가 쓰러지자 그는 혼인 약속을 빗대어 조롱한다.
이어 그를 지키려 달려온 아시오스와 맞선다. 이도메네우스의 창은 아시오스의 뺨 아래 울대뼈를 꿰뚫었고, 그는 도끼에 베인 나무처럼 말들과 전차 앞에 쓰러진다. 그의 마부도 머뭇거리다가 안틸로코스의 창에 몸 한복판을 꿰뚫려 목숨을 잃는다.
은밀히 돕는 신(헤이토비의 시선)
이 대목에는 크로노스의 두 아들인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서로 다른 것을 꾀한다는 서술이 나옵니다. 두 신은 같은 혈통에서 태어났지만 제우스가 먼저 태어나 아는 것이 더 많기에, 포세이돈은 드러내놓고 돕지 못한 채 인간의 모습으로 진중을 오가며 남몰래 아르고스인들을 부추깁니다.
신들의 세계에도 위계와 눈치 보기가 존재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예언자로, 토아스로 매번 다른 얼굴을 빌려야 하는 처지는 다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그만큼 이 개입이 절박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직접 나서지 못하는 신의 답답함이 오히려 인간 영웅들의 결단과 활약을 더 도드라지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13권 A를 덮으며
제우스의 시선이 트로이아를 떠난 사이, 포세이돈은 얼굴을 바꿔가며 전황에 발을 들인다. 그 격려 속에서 이도메네우스는 창을 들어 전과를 올리기 시작한다. 다음 편에서는 알카토오스의 죽음을 계기로 아이네이아스가 나서고, 전장은 더욱 치열해진다.
참고자료: 호메로스《일리아스》, 이준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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