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 완전히 아킬레우스 쪽으로 기울면서 트로이아인들은 스카만드로스강으로 몰립니다. 아킬레우스는 강물 안에서도 살육을 멈추지 않고, 시신이 물길을 가로막자 마침내 강의 신이 직접 그를 공격합니다. 인간과 자연신이 맞서는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지는 21권의 전반부를 정리해 봅니다.

뤼카온의 죽음, 두 번째 자비는 없었다
아킬레우스는 강물 밖으로 빠져나오던 프리아모스의 아들 뤼카온과 마주칩니다. 예전에 아버지의 과수원에서 그를 붙잡아 렘노스섬으로 데려가 황소 백 마리 값에 판 적이 있었습니다. 뤼카온은 그곳에서 다시 세 배의 몸값을 치르고 풀려났으며, 일리오스로 돌아온 지 열두 번째 날에 또다시 아킬레우스와 마주친 것입니다.
뤼카온은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붙잡고 목숨을 구걸합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뒤로는 어떤 트로이아인에게도, 특히 프리아모스의 아들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자신도 결국 죽을 운명인데 어째서 뤼카온이 죽음을 피하려 하느냐며, 칼로 그의 목과 빗장뼈 부근을 내리칩니다. 이어 시신의 발을 붙잡아 강물에 던지고 물고기들이 먹게 될 것이라고 외칩니다.
아스테로파이오스와의 결투, 두 자루 창을 쓴 자
이어 아킬레우스는 파이오니아인들의 장수 아스테로파이오스와 맞섭니다. 그는 악시오스강의 후손으로, 일리오스에 온 지 열한 번째 날을 맞은 참이었습니다. 양손을 두루 잘 쓰는 그는 두 자루의 창을 한꺼번에 던집니다. 한 자루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꽂혔지만 황금층을 뚫지 못했고, 다른 한 자루는 오른쪽 팔꿈치를 스쳐 피를 냅니다.
아킬레우스가 던진 물푸레나무 창은 빗나가 강둑에 깊이 박힙니다. 아스테로파이오스는 그것을 세 차례나 뽑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아킬레우스의 칼에 목숨을 잃습니다. 그의 시신은 강물과 모래 위에 놓인 채 장어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이어 다른 파이오니아 장수들까지 차례로 쓰러뜨립니다.
강의 신이 인간의 목소리로 경고하다
아킬레우스가 계속해서 강물 안에서 사람들을 죽이자 스카만드로스는 분노합니다. 그는 인간의 목소리로 아킬레우스에게, 트로이아인들을 죽이더라도 들판에서 죽이라며 더는 자신의 물줄기를 시신으로 막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아킬레우스는 강 안에서의 살육은 멈추겠지만, 트로이아인들을 추격하는 일은 헥토르와 결판을 낼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강은 거대한 물결을 일으켜 시신들을 밀어내고, 살아남은 트로이아인들을 자신의 물속에 숨겨 구해줍니다.
강물에 쫓기는 아킬레우스
스카만드로스가 거센 물결로 덮치자 아킬레우스는 느릅나무를 붙잡지만, 나무마저 뿌리째 뽑혀 강둑을 무너뜨립니다. 가까스로 물 밖으로 뛰어오른 뒤에도 강물은 계속해서 그를 뒤쫓습니다. 그 모습은 농부가 판 도랑을 따라 흐르는 물이 길을 내는 사람을 앞지르는 장면에 비유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트로이아 성벽 아래에서 아폴론의 화살에 죽을 줄 알았는데, 이름 없이 강물에 휩쓸려 죽게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차라리 헥토르에게 죽었더라면 더 영광스러웠을 것이라고 한탄합니다.
포세이돈과 아테네의 원조, 헤파이스토스의 불
포세이돈과 아테네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킬레우스의 손을 잡고, 그의 운명이 강물에 죽도록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스카만드로스는 형제 강 시모에이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두 강이 힘을 합쳐 아킬레우스를 덮치려 하자, 헤라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불로 강을 제압하라고 명합니다.
헤파이스토스의 불이 들판의 시신과 나무와 갈대를 태우고 강물까지 끓게 하자, 스카만드로스는 트로이아인들을 돕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헤라가 불을 거두게 하면서 강과 불의 싸움은 끝납니다.
분노조차 넘을 수 없었던 경계(헤이토비의 시선)
뤼카온이 무릎을 붙잡고 애원해도 아킬레우스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의 두려움과 슬픔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합니다. 시신이 강물을 가로막아도 멈추지 않는 모습에서는 그의 분노가 어디까지 치달았는지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런 아킬레우스도 강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여러 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고, 강을 물러서게 한 것도 헤파이스토스의 불이었습니다.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던 아킬레우스가 물살에 쫓기는 장면을 보며,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도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권 A편을 덮으며
강물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아킬레우스 앞에는 또 다른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전쟁에 뛰어든 신들은 이제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눕니다. B편에서는 올림포스 신들이 서로 맞붙고, 아폴론은 트로이아인들이 성안으로 피할 시간을 벌기 위해 아킬레우스를 다른 곳으로 유인합니다.
참고 자료: 호메로스, 《일리아스》, 이준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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