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로클로스의 화장을 마친 아킬레우스는 벗을 기리는 장례 경기를 엽니다. 슬픔에 잠겨 있던 아카이아인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이고,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가진 귀한 물건들을 경기의 상품으로 내놓습니다. B편에서는 가장 먼저 열린 전차 경주와 신들의 개입, 그리고 순위를 둘러싼 인간적인 다툼과 화해를 살펴봅니다.

전차 경주의 상품과 참가자들
아킬레우스는 군사들을 무덤 자리에 넓게 둘러앉힌 뒤 배에서 전리품을 꺼내왔습니다. 전차 경주의 상품으로 일등은 여러 일에 능한 여인과 귀 달린 스물두 메트론들이 세발솥, 이등은 노새 새끼를 밴, 아직 길들이지 않은 여섯 살배기 암말, 삼등은 불 위에 올려놓은 적 없는 네 메트론짜리 가마솥, 사등은 황금 두 탈란톤, 오등은 손잡이 둘 달린 솥이 내걸렸습니다.
참가자로는 아드메토스의 아들 에우멜로스,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 아트레우스의 아들 메넬라오스,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 그리고 메리오네스가 차례로 일어나 전차를 준비했습니다.
네스토르의 노련한 조언
안틸로코스가 전차를 준비하자 아버지 네스토르는 아들에게 요령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안틸로코스의 말이 다른 말들보다 느리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꾀가 있어야 키잡이도 포도줏빛 바다 위에서 바람에 휘둘리는 빠른 배를 똑바로 몰고 가는 법이야"라며 반환점을 도는 법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두 팔을 벌린 높이로 서 있는 메마른 나무토막을 표지로 삼아 몸을 말들보다 약간 왼쪽으로 기울이고, 오른쪽 말을 가시 채로 다그치며 왼쪽 말을 반환점에 닿을 듯 붙이라는 구체적인 지시였습니다. 다섯 명이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했는데 안틸로코스, 에우멜로스, 메넬라오스, 메리오네스, 디오메데스 순으로 늘어섰습니다.
여신들의 개입과 결승선 드라마
경주가 시작되자 처음에는 에우멜로스의 암말들이 앞서 나갔고, 디오메데스가 모는 트로스의 수말들이 바짝 뒤쫓았습니다. 이때 아폴론이 튀데우스의 아들에게 원한을 품고 그의 손에서 빛나는 채찍을 떨어뜨렸으나, 이를 지켜본 아테네가 채찍을 돌려주고 말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여신은 이번에는 에우멜로스에게 원한을 품고 뒤쫓아가 말 멍에를 부숴놓았고, 말들은 길 양옆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에우멜로스는 전차에서 바퀴 옆으로 굴러떨어져 팔꿈치와 입, 코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결국 디오메데스가 가장 먼저 결승점에 들어왔고, 안틸로코스는 좁은 길목에서 메넬라오스를 앞질러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도메네우스와 아이아스의 말다툼
멀리서 경주를 지켜보던 이도메네우스가 선두로 달려오는 말들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오일레우스의 아들 아이아스는 "당신이 아르고스인들 중에서 제일 젊다고 할 수도 없고, 당신 머리에 달린 두 눈도 제일 날카롭게 보는 건 아니잖소"라며 그를 비난했고, 두 사람은 거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때 아킬레우스가 몸소 일어나 "이제 더는 서로 험악한 말을 섞지 맙시다. 그대들은 이럴 게 아니라 사람들 모인 자리에 앉아 말들이나 바라봅시다. 어차피 저이들도 승리를 향해 몸부림치며 금세 여기로 말을 몰고 오겠지요"라며 다툼을 가라앉혔습니다. 그의 말대로 곧 튀데우스의 아들이 어깨에서 줄곧 채찍을 휘두르며 가까이 내달려왔고, 바퀴 자국을 거의 남기지 않은 채 사람들 모인 자리 한가운데 멈춰 섰습니다.
에우멜로스를 위로하고 네스토르에게 선물하다
가장 뒤처져 들어온 에우멜로스를 본 아킬레우스는 그를 가여워하며 이등상을 주자고 제안했으나, 안틸로코스가 자신이 정당하게 얻은 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미소 지으며 안틸로코스의 편을 들고, 대신 아스테로파이오스에게서 빼앗은 청동 가슴받이를 에우멜로스에게 건넸습니다.
한편 메넬라오스는 안틸로코스가 무모하게 앞을 가로막았다고 화를 냈지만, 안틸로코스가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더 나은 분이라며 암말을 내어주자 마음이 누그러져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킬레우스는 경기에 나서지 않은 네스토르에게 노년의 명예를 기리며 다섯 번째 상인 손잡이 둘 달린 솥을 따로 선물했고, 네스토르는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승부보다 사람이 앞선 순간(헤이토비의 시선)
이 전차 경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결과가 정해진 뒤였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불운하게 낙마한 에우멜로스를 배려하면서도, 이등상을 지키려는 안틸로코스의 주장도 받아들였습니다. 안틸로코스 역시 메넬라오스와의 다툼이 커지자 자신이 받은 암말을 내어놓았고, 메넬라오스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여 암말을 돌려주며 다시는 더 나은 사람을 속이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승리를 두고 거친 말이 오갔지만, 누구도 상대의 명예까지 빼앗으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투고도 다시 마음을 풀어가는 모습이 오래 남았습니다.
23권 B를 덮으며
전차 경주는 디오메데스의 승리로 끝났지만, 경기가 끝난 뒤 벌어진 다툼과 화해도 오래 남습니다. 안틸로코스는 암말을 내어놓았고, 메넬라오스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여 돌려주었습니다. C편에서는 권투와 레슬링, 달리기, 무기를 든 결투, 원반던지기, 궁술과 투창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 호메로스,《일리아스》, 이준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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