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5권은 인간 영웅 디오메데스가 여신 아프로디테와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직접 창을 겨누는, 그야말로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권입니다. 아테네 여신의 축복으로 신과 인간을 구별하는 눈을 얻은 디오메데스가 전장을 종횡무진하며 트로이아군을 밀어붙이는 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디오메데스, 신을 보는 눈을 얻다
판다로스가 쏜 화살에 어깨를 맞은 디오메데스는 아테네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아테네는 그의 사지뿐만 아니라 두 발도, 그 위의 두 손도 가볍게 해준 다음, 신과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과 세 배에 달하는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다만 단서를 붙입니다. 아프로디테를 제외한 어떤 신과도 맞서 싸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힘을 얻은 디오메데스는 사자처럼 전장을 휩쓸며 아스튀노오스, 휘페이론, 아바스, 폴뤼에이도스, 크산토스와 토온 등 트로이아 병사들을 잇달아 쓰러뜨립니다.
판다로스의 죽음과 아프로디테의 부상
아이네이아스는 판다로스를 찾아가 함께 전차에 올라 디오메데스에게 맞섭니다. 판다로스의 창은 디오메데스의 방패를 뚫고 가슴받이 근처까지 이르지만, 그를 다치게 하지는 못합니다. 반격에 나선 디오메데스의 창이 판다로스의 얼굴을 꿰뚫어 즉사시킵니다.
아이네이아스는 시신을 지키려 뛰어내리지만 디오메데스가 던진 바윗덩이에 넙적다리와 엉덩이가 이어지는 대접이 으스러지면서 쓰러집니다. 위기의 순간 어머니 아프로디테가 눈부신 옷으로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감싸 구해내지만, 디오메데스의 창끝이 그녀의 손끝을 찔러 상처를 입힙니다. 아프로디테는 눈물을 흘리며 올림포스로 피신합니다.
아폴론의 경고, 아이네이아스의 회복
아프로디테가 떠난 자리, 아폴론이 직접 나서 아이네이아스를 감싸 안습니다. 디오메데스는 세 차례나 달려들지만 아폴론이 그의 빛나는 방패를 쳐내고, 네 번째 시도에서 죽음을 모르는 신들과 땅 위를 걷는 인간의 종족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준엄한 경고를 듣습니다.
아폴론은 아이네이아스를 페르가모스의 신전으로 옮겨 레토와 아르테미스에게 치료를 맡기고, 그와 똑같은 모습의 헛것을 만들어 전장에 남겨둡니다. 이후 양쪽 병사들은 이 헛것을 두고 서로 방패를 부딪치며 싸움을 이어갑니다.
사르페돈의 질책과 트로이아군의 반격
아폴론의 부탁을 받은 아레스가 트라케인을 이끄는 날렵한 아카마스의 모습으로 전장에 뛰어들고, 사르페돈은 헥토르에게 "예전에 그대에게 있던 그 용기는 대체 어디로 갔소"라며 따끔하게 질책합니다. 자극받은 헥토르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회복한 아이네이아스도 동료들 사이로 돌아와 기쁨을 안깁니다.
아가멤논이 아이네이아스의 전우 데이코오스를 죽이자, 아이네이아스는 크레톤과 오르실로코스 형제를 죽여 되갚습니다.
사르페돈과 틀레폴레모스는 서로에게 창을 명중시켜, 틀레폴레모스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사르페돈은 부상당한 채 실려 나갑니다. 오뒷세우스도 뤼키아 병사 여럿을 쓰러뜨리며 거들지만, 헥토르는 사르페돈의 부탁조차 외면한 채 아르고스인들을 몰아내는 데만 몰두합니다. 사르페돈은 북풍 보레아스의 숨결로
기운을 되찾습니다.
아테네의 도움으로 아레스를 찌르다
아레스의 파괴적인 개입으로 아르고스인들이 밀리자, 헤라와 아테네는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황금 전차를 몰고 직접 전장에 내려옵니다. 아테네는 하데스의 투구를 써 아레스의 눈을 피한 채 디오메데스 곁에 서고, 디오메데스가 내지른 창을 아레스의 옆구리 맨 밑부분으로 정확히 밀어 넣습니다. 아레스는 일만 명의 함성과 맞먹는 비명을 지르며 구름에 휩싸여 올림포스로 달아납니다.
제우스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지만 "올림포스의 신들 중 네놈을 가장 증오한다"는 매서운 핀잔만 돌아오고, 그럼에도 제우스는 파이에온에게 치료를 명해 아레스를 회복시킵니다. 이렇게 5권은 아레스의 살육을 멈추게 한 헤라와 아테네가 위대한 제우스의 집으로 돌아가며 마무리됩니다.
인간이 신을 찌른 하루, 그 의미를 생각하다
5권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디오메데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를 연이어 찌르는 장면이 단순한 '영웅의 용맹'으로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이 사건을 대단한 업적처럼 그리면서도, 동시에 신들 스스로 ‘신들과 맞먹으려 들지 말라’는 경고를 아폴론의 입을 빌려 분명히 못 박아두는군요. 인간의 용기가 신의 영역을 잠시 흔들 수는 있어도, 결국 그 경계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특히 신을 찌른 힘마저 다른 신에게서 나왔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디오메데스의 눈부신 활약 뒤에서, 인간의 용기와 신의 뜻이 어디까지 맞물려 있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5권을 덮으며
아테네의 축복을 등에 업은 디오메데스의 활약은, 인간의 용기가 신들의 개입 속에서도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빛나는 하루조차 결국 신들의 뜻 안에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과 신 사이의 경계는 여전히 견고했습니다. 다음 6권에서는 이 격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 호메로스, 《일리아스》, 이준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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