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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오뒷세이아》 5권 B, 폭풍을 건너 파이아케스의 땅에 닿은 오뒷세우스

by 헤이토비 2026. 10. 11.

칼륍소가 보내 준 순풍을 타고 오뒷세우스는 마침내 홀로 바다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포세이돈의 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폭풍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은 그를 붙잡아 준 것은 뜻밖의 손길들이었습니다.

폭풍 속에서 부서진 뗏목을 붙든 오뒷세우스

 

열여드레의 항해와 포세이돈의 분노

오뒷세우스는 밤에도 잠들지 않고 별을 보며 키를 잡았습니다. 칼륍소가 일러 준 대로 큰곰자리를 왼쪽에 두고 열이레를 항해하자, 열여드레째 파이아케스 사람들의 땅이 방패처럼 바다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때 아이티옵스인들에게서 돌아오던 포세이돈이 그를 보고 격노했습니다. 그는 재앙만큼은 넘치도록 안겨 주겠다며 삼지창을 쥐고 구름을 끌어모은 뒤, 동풍과 남풍, 서풍과 북풍을 한꺼번에 일으켜 바다를 뒤집었습니다.

트로이아에서 죽었더라면

오뒷세우스는 무릎이 풀려 탄식했습니다. 칼륍소가 말한 고통이 이제 시작되었다며, 트로이아에서 죽은 이들이 세 배, 네 배는 더 복받았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죽었다면 장례라도 치르고 이름이라도 남았을 텐데, 이제는 서러운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거대한 파도가 덮쳐 그는 뗏목에서 멀리 떨어졌고, 돛대가 부러지면서 돛과 활대도 바다로 사라졌습니다. 칼륍소가 준 옷이 무거워 한참을 물속에 잠겨 있던 그는, 겨우 떠올라 지친 몸으로도 뗏목을 다시 붙들었습니다.

레우코테아의 면사포

그런 그를 카드모스의 딸 이노, 곧 바다의 여신 레우코테아가 가엾게 여겼습니다. 슴새의 모습으로 날아와 뗏목에 앉은 그녀는, 옷을 벗고 뗏목을 버린 채 헤엄쳐 가라고 일렀습니다. 그리고 면사포를 건네며, 가슴에 두르고 가다가 뭍에 닿으면 풀어서 바다로 멀리 던지라고 했습니다.

오뒷세우스는 또 다른 계략일까 의심하며, 뗏목이 버티는 동안은 그 위에 남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포세이돈이 일으킨 파도가 뗏목을 겨 더미처럼 흩어 놓았습니다. 그는 나무토막 하나에 말 타듯 올라 옷을 벗고 면사포를 두른 뒤 바다로 뛰어들었고, 이를 본 포세이돈은 아이가이로 떠났습니다.

바위 해안에 붙든 목숨

아테네가 다른 바람을 모두 잠재우고 북풍만 남겼지만, 오뒷세우스는 이틀 밤낮을 파도에 떠밀려 다녔습니다. 사흘째 바다가 잔잔해지자 마침내 가까이 뭍이 보였습니다. 오래 앓던 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 자식들이 느끼는 기쁨처럼 반가운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포구 하나 없는 바위 절벽이었습니다. 파도에 떠밀려 간 그는 두 손으로 바위를 붙잡았지만, 되밀려오는 파도에 다시 끌려 나갔습니다. 구멍에서 끌려 나온 문어 빨판에 돌멩이가 붙어 나오듯, 그의 손 살갗이 바위에 찢겨 나갔습니다. 아테네가 지혜를 주지 않았다면 그는 거기서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강의 신과 두 올리브나무

그는 해안을 따라 헤엄치다가, 바위도 매끄럽고 바람도 피할 수 있는 강어귀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탄원자로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빌자, 강은 흐름을 멈추고 그를 받아 주었습니다.

한참을 쓰러져 있다가 기운을 되찾은 그는 면사포를 풀어 강물에 띄워 보냈습니다. 그리고 갈대밭에 누워 곡식을 내어 주는 땅에 입을 맞췄습니다. 그날 밤 그는 한 뿌리에서 자란 야생 올리브와 올리브나무 아래에 낙엽을 긁어모아 잠자리를 만들고 그 속에 몸을 묻었습니다. 아테네는 그의 눈 위로 잠을 쏟아부었습니다.

올리브나무 아래 낙엽에 몸을 묻고 잠든 오뒷세우스

 

잿더미 속에 묻어 둔 불씨 (헤이토비의 시선)

5권 B의 마지막에는 불씨를 지키는 비유가 나옵니다. 이웃 없는 외딴 들판에 사는 사람이 불붙은 나무토막을 잿더미 아래 묻어 두듯, 오뒷세우스도 낙엽 속에 몸을 묻었습니다. 뗏목과 옷을 모두 잃고 겨우 잠자리를 마련한 그를 불씨에 빗댄 대목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에게 손을 내민 레우코테아도 한때 인간이었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된 존재가 바다에 빠진 인간을 가엾게 여겼다는 점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장면을 읽으며 도쿄에 혼자 자유여행을 갔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열차를 반대 방향으로 탔는데 하필 급행이라 한참 먼 곳까지 가 버렸습니다. 내렸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지요. 파파고로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어 가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오뒷세우스의 고생에 견줄 일은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 막막함은 그날 조금 알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뒷세우스가 탄식하며 떠올린 '펠레우스의 아들'은 누구인가요?
주석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를 가리킵니다. 오뒷세우스는 아킬레우스가 쓰러지던 그날 자신도 죽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탄식합니다.

Q. 포세이돈 앞에 붙는 '지축을 뒤흔드는'은 무슨 뜻인가요?
주석에 따르면 '지축을 뒤흔드는'은 포세이돈에게만 붙는 고유한 수식어입니다.

5권 B를 덮으며

레우코테아와 아테네, 그리고 강의 도움으로 오뒷세우스는 파이아케스 사람들의 땅에 닿았습니다. 낙엽 속에 잠든 그는 이곳이 어떤 사람들의 땅인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참고 자료: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이준석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