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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일리아스》 10권, 돌론의 정탐 그리고 최후

by 헤이토비 2026. 9. 4.

전황이 급박해지자 아가멤논은 잠 못 이루고 뒤척입니다. 메넬라오스 역시 근심에 잠긴 채 지휘관들을 깨워 함께 회의를 소집합니다. 트로이아군의 동태를 파악할 정탐꾼을 보내기로 하면서,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가 어둠을 뚫고 적진으로 향합니다. 《일리아스》 10권은 전투 대신 은밀한 첩보전으로 채워진 이색적인 밤의 이야기입니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불면


다른 아카이아인들은 모두 배 곁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아가멤논만은 근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트로이아 벌판에 타오르는 수많은 횃불과 피리 소리에 놀라면서도, 정작 자신의 군대를 바라볼 때면 가슴속 시름이 더욱 깊어집니다. 제우스가 벼락과 폭풍우를 내리듯 그의 심장은 요동치고, 결국 그는 넬레우스의 아들 네스토르를 찾아가 재앙을 막을 계책을 짜기로 결심하고 사자 가죽을 두르고 창을 쥔 채 나섭니다.

메넬라오스 역시 전율에 잠들지 못하고 표범 가죽을 두른 채 무장하여 형을 찾아가, 혹시 정탐을 보내려는 것이냐 묻습니다.

네스토르와의 상의


아가멤논은 네스토르에게 제우스가 헥토르를 통해 자신을 벌하고 있다며 근심을 토로하고, 경계병들이 지쳐 잠들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자고 제안합니다. 네스토르는 헥토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우스가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 위로하며 동행을 승낙합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자줏빛 외투를 걸치고 창을 쥔 뒤, 디오메데스, 오디세우스, 아이아스들, 이도메네우스까지 두루 깨우자고 제안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혼자 고생하는 형을 두고 잠든 것 아니냐며 메넬라오스를 넌지시 나무라는데, 아가멤논은 동생이 이미 먼저 깨어 자신에게 왔었다며 감싸줍니다.

정탐꾼들의 소집과 자원


네스토르와 아가멤논은 참호를 건너 지휘관들을 깨우러 나섭니다. 먼저 오디세우스를 깨우고, 이어 황소 가죽 위에서 깔개를 베고 깊이 잠들어 있던 디오메데스를 찾아갑니다. 네스토르가 그를 흔들어 깨우자, 디오메데스는 밤중에 자신을 깨운 노신사에게 퉁명스레 농담 섞인 투정을 부리면서도, 곧 사자 가죽을 걸치고 창을 쥔 채 나섭니다.

이들은 함께 경계병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 보니, 병사들은 무장한 채 눈을 뜨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 안심합니다. 이후 장수들은 참호 밖 빈터에 모여 트로이아 진영으로 잠입해 정보를 얻어 올 정탐꾼을 자원받습니다. 디오메데스가 먼저 나서고 여러 영웅이 동행을 자청하자, 그는 그중 지략이 뛰어난 오디세우스를 직접 선택합니다.

돌론의 생포와 실토


트로이아 진영에서도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불멸의 말과 청동 전차를 상으로 내걸어 정탐꾼을 모집하고, 부유하지만 볼품없는 에우메데스의 외아들 돌론이 이에 자원합니다. 밤을 뚫고 아카이아군의 배들을 향해 달리던 돌론은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에게 발각되어 추격당합니다. 디오메데스가 일부러 빗맞힌 창에 공포로 몸이 굳은 그는 붙잡히자 눈물을 흘리며 몸값을 치르겠다고 애원합니다.

다그쳐 묻는 오디세우스에게 돌론은 헥토르의 위치와 경계병 배치, 새로 합류한 트라케 왕 레소스의 흰 준마 정보까지 낱낱이 실토하지만, 디오메데스는 그대로 칼을 휘둘러 그를 처단합니다.

레소스 진영 습격


두 사람은 돌론의 늑대 가죽과 활, 투구 등 무구를 거두어 아테네에게 바치겠다고 기도한 뒤, 위성류 가지에 걸어 표식을 남기고 잠든 트라케인들의 진영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갓 합류한 레소스의 병사들이 무구를 세 줄로 가지런히 놓아둔 채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도움을 받은 디오메데스는 목자 없는 양 떼를 덮치는 사자처럼 칼을 휘둘러 레소스를 포함해 열세 명을 차례로 살해하고, 오디세우스는 그사이 시신을 뒤로 끌어내 말들이 시체를 밟고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레 정리합니다. 아폴론이 뒤늦게 이를 알아채 트라케인 히포코온을 깨워 학살이 발각되지만, 두 사람은 이미 노획한 말들을 몰아 진영을 벗어난 뒤였습니다.

잠든 적을 향한 칼날

10권에서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의 활약은 대담하고 뛰어납니다. 두 사람은 캄캄한 적진으로 들어가 필요한 정보를 얻고, 레소스의 말까지 빼앗아 무사히 돌아옵니다. 그러나 읽고 나면 그 활약만 시원하게 남지는 않습니다.

돌론은 붙잡히자 살려 달라고 울며 애원하고, 레소스와 트라케인들은 칼을 잡아 보지도 못한 채 잠자리에서 죽습니다. 아카이아군에게는 꼭 필요한 성공이었겠지만, 밤의 기습은 낮의 전투와 다른 싸늘함을 남깁니다. 누군가에게는 빛나는 무용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다가 맞은 죽음일 뿐입니다. 그래서 10권의 어둠은 영웅들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면서도, 전쟁이 얼마나 쉽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지를 보여주는 밤처럼 느껴집니다.

10권을 덮으며


10권은 앞뒤 권과 결이 다른 밤의 이야기입니다. 정면 전투 대신 첩보와 기습이 서사를 이끌고,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존재감도 옅어집니다. 학계에서는 이 권을 후대에 삽입된 독립된 이야기인 ‘돌로네이아’로 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어둠 속 추격과 기습은 서사시의 이색적인 막간극으로 읽을 만합니다.

참고자료: 호메로스,《일리아스》, 이준석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