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문학

《일리아스》 19권, 분노는 거두었으나 슬픔은 남았다

by 헤이토비 2026. 9. 20.

《일리아스》19권에서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향한 분노를 거두고 다시 전장으로 나설 준비를 합니다. 두 사람은 마침내 화해하지만,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슬픔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 무장을 받아 든 아킬레우스가 전장으로 돌아가기까지의 하루를 여섯 장면으로 정리했습니다.

 

새벽에 도착한 무장, 다시 일어선 아킬레우스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빛을 나누어주던 아침, 테티스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무장을 들고 배들 곁에 내려왔습니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끌어안고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테티스는 죽은 이는 신들의 뜻대로 쓰러진 것이니 이제 누워 있도록 두고, 새 무장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무장이 굉음을 울리자 뮈르미돈인들은 겁에 질려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더욱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파리 떼가 시신의 상처에 구더기를 낳아 살이 썩을까 두렵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테티스는 파리 떼를 쫓아주고, 일 년 동안 누워 있어도 살갗이 변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어 파트로클로스의 콧속에 암브로시아와 붉은 넥타르를 흘려 넣었습니다.

분노를 거둔 아킬레우스, 아테를 탓한 아가멤논

아킬레우스는 회의장에서 아가멤논에게 먼저 화해의 뜻을 밝혔습니다. 한 여인을 두고 벌인 불화가 두 사람에게 과연 좋은 일이었느냐고 물으며, 브리세이스를 얻던 날 아르테미스가 그녀를 죽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랬다면 수많은 아카이아인이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며, 이 불화로 이득을 본 것은 헥토르와 트로이아인들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일을 덮고 분노를 거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잘못이 제우스와 모이라, 에리뉘스가 불어넣은 아테, 곧 현혹 때문이었다고 해명합니다. 이어 헤라의 계략에 속은 제우스가 아테를 올림포스에서 내던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약속했던 보상을 모두 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굶은 채로는 싸울 수 없다는 오뒷세우스

아킬레우스가 선물보다 전투가 먼저라며 곧장 출정하자고 하자, 오뒷세우스가 이를 막아섰습니다. 병사들을 굶긴 채 싸우게 해서는 안 되며, 빵과 포도주를 먹어야 힘을 내어 온종일 싸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뒷세우스는 선물을 회의장에 가져오게 하고,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와 잠자리를 함께한 적이 없다고 맹세한 뒤 화해의 잔치도 열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친구가 찢긴 몸으로 막사에 누워 있는데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겠느냐며 거절합니다. 오뒷세우스는 아킬레우스의 용기를 인정하면서도, 오랜 전투를 치르려면 먼저 먹어야 한다고 거듭 설득했습니다.

선물과 맹세, 그리고 각자의 눈물

회의장 한가운데에는 세발솥 일곱 개와 가마솥 스무 개, 말 열두 필과 여인 일곱 명이 놓였습니다. 여덟 번째로 브리세이스가 나왔고, 황금 열 탈란톤도 저울에 달렸습니다. 아가멤논은 수퇘지를 바치며 제우스와 가이아, 헬리오스, 에리뉘스에게 브리세이스와 몸을 섞은 적이 없다고 맹세했습니다.

막사로 돌아온 브리세이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찢긴 몸을 보고 통곡했습니다. 남편과 세 오라비를 잃었을 때, 파트로클로스가 자신을 아킬레우스의 아내로 만들어주겠다고 위로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다른 여인들도 함께 울었지만, 저마다 자신의 불행을 두고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아킬레우스 역시 음식을 거절한 채 아버지 펠레우스와 스퀴로스에 있는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무장을 갖춘 아킬레우스와 크산토스의 예언

아킬레우스가 끝내 음식을 먹지 않자 제우스는 아테네를 보내, 굶주림에 약해지지 않도록 그의 가슴속에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흘려 넣게 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정강이받이와 가슴받이, 은 못을 박은 칼을 걸치고 달빛처럼 빛나는 방패를 들었습니다. 말총 장식 투구를 쓰고 움직여보니 새 무장은 날개처럼 가벼웠습니다. 아버지 펠레우스에게 물려받은 물푸레나무 창은 오직 아킬레우스만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그가 크산토스와 발리오스에게 이번에는 고삐를 잡은 이를 버려두지 말라고 하자, 헤라에게 목소리를 얻은 크산토스가 그의 파멸이 가까웠다고 예언했습니다. 에리뉘스가 목소리를 막았지만,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안다며 전장으로 나아갔습니다.

분노는 거두었지만(헤이토비의 시선)

19권에서는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화해보다 브리세이스의 울음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파트로클로스를 두고 울던 여인들은 저마다 자신이 잃은 사람과 지나온 불행을 함께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묻어두었던 내 슬픔까지 따라 나오는 일은 지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분노는 거두었지만 슬픔까지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크산토스가 죽음을 예고해도 멈추지 않고, 먹지도 않은 채 무장을 갖춰 전장으로 향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나아가는 모습이라 그 화해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19권을 덮으며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과 화해했지만,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슬픔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음식도 먹지 않은 채 새 무장을 갖추고, 크산토스가 죽음을 예고하는데도 멈추지 않습니다. 분노는 거두었지만 친구를 잃은 슬픔은 오히려 복수심으로 타올랐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말을 몰아 전장으로 나서는 아킬레우스. 19권은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참고자료: 호메로스《일리아스》, 이준석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