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문학

《일리아스》 17권 B, 시신을 지키려는 사투와 비보를 안고 떠난 안틸로코스

by 헤이토비 2026. 9. 17.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무장을 입고 힘을 얻은 뒤, 전장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둘러싼 전면전으로 번집니다. 시신을 빼앗으려는 트로이아군과 끝까지 지키려는 아카이아군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섭니다. 안개 속 혼전부터 안틸로코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비보를 전하러 달려가는 순간까지, 17권의 나머지를 정리합니다.

 

시신 주위에 세워진 방패 울타리


아이아스는 메넬라오스에게 아카이아군의 지휘관들을 불러 모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메넬라오스가 큰 소리로 외치자 작은 아이아스가 가장 먼저 달려오고,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도 뒤따릅니다. 이들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 주위에 모여 방패로 단단한 울타리를 치고, 제우스는 시신 주변에 짙은 안개를 드리워 전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힙포토오스는 파트로클로스의 발목을 가죽끈으로 묶어 끌고 가려 하지만, 아이아스가 투구의 뺨 덮개를 창으로 꿰뚫어 그를 쓰러뜨립니다. 이어 헥토르가 아이아스를 노리고 던진 창은 빗나가 포케우스인들의 지휘자 스케디오스를 쓰러뜨립니다. 아이아스는 곧바로 포르퀴스의 배를 찔러 창자를 쏟아지게 하고, 헥토르를 비롯한 트로이아 선두 대열은 잠시 뒤로 물러납니다.

시신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


아폴론은 전령 페리파스의 모습을 하고 아이네이아스에게 다가가, 제우스가 트로이아인들의 승리를 바라고 있다며 그를 부추깁니다. 아이네이아스는 곧 전열 앞으로 나아가 뤼코메데스의 전우 레이오크리토스를 창으로 찔러 죽입니다.

양쪽 군대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가운데 두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호메로스는 이 모습을 여러 사람이 기름을 먹인 황소 가죽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장면에 비유합니다. 트로이아인들은 시신을 일리오스 쪽으로, 아카이아인들은 속이 빈 배들 쪽으로 끌고 가려 하면서 한 뼘의 땅 위에서 치열한 줄다리기를 이어갑니다.

아우토메돈, 홀로 전차를 몰며 싸우다


한편 아킬레우스의 불멸의 말들은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뒤 움직이지 않은 채 눈물을 흘립니다. 제우스는 인간에게 매인 불멸의 말들을 가엾게 여기며, 헥토르가 그 말들까지 차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어 말들의 무릎과 가슴에 힘을 불어넣자, 말들은 다시 빠르게 전차를 몰기 시작합니다.

마부 아우토메돈은 홀로 창과 고삐를 함께 다루지 못해 애를 먹다가, 전우 알키메돈이 고삐를 맡아주자 비로소 창을 마음껏 휘두릅니다. 그는 제우스에게 기도한 뒤 아레토스를 창으로 꿰뚫어 쓰러뜨립니다. 헥토르가 던진 창은 몸을 숙인 아우토메돈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갑니다.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 크로미오스가 칼을 들고 달려들려는 순간, 두 아이아스와 메넬라오스가 나타나 그들을 물러나게 합니다.

아테네의 도움과 제우스의 천둥


아테네는 포이닉스의 모습을 하고 메넬라오스에게 다가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지키도록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힘을 얻은 메넬라오스는 헥토르의 절친한 전우 포데스를 창으로 찔러 쓰러뜨립니다. 그러자 아폴론은 파이놉스의 모습으로 헥토르를 찾아가 전의를 되살리고, 제우스는 이다산에 구름을 모아 천둥을 울리며 트로이아인들에게 승리의 징조를 내립니다.

헥토르는 레이토스의 손목을 찔러 전선에서 물러나게 합니다. 이어 전차 위에 있던 이도메네우스를 향해 창을 던지지만, 창은 빗나가 메리오네스의 동료이자 마부인 코이라노스를 맞힙니다. 코이라노스가 쓰러지자 메리오네스는 고삐를 집어 들고, 이제는 빠른 배들을 향해 물러나야 한다고 이도메네우스에게 말합니다.

아이아스의 기도와 안틸로코스의 눈물


짙은 안개 속에서 전황을 살필 수 없게 되자 아이아스는 제우스에게 안개를 걷고 맑은 하늘을 보여달라고 기도합니다. 죽어야 한다면 차라리 밝은 빛 속에서 죽게 해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제우스가 이를 가엾이 여겨 안개를 걷어내자 싸움터가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아스는 메넬라오스에게 안틸로코스가 살아 있는지 찾아보고, 아킬레우스에게 소식을 전하게 하자고 말합니다. 메넬라오스는 전우들을 격려하고 있던 안틸로코스를 찾아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알립니다. 안틸로코스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무장을 라오도코스에게 맡긴 뒤 아킬레우스에게 비보를 전하러 떠납니다.

두 아이아스의 방벽,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몫(헤이토비의 시선)

메넬라오스와 메리오네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짊어지고 물러나는 동안, 두 아이아스는 뒤에서 헥토르와 트로이아인들을 막아섭니다. 호메로스는 시신을 옮기는 두 사람을 험한 산길에서 통나무를 끄는 노새에, 추격을 저지하는 두 아이아스를 거센 물길을 막아선 산에 비유합니다.

이 장면을 읽으며 마음에 남은 것은 영웅들의 용맹보다 살아남은 이들이 짊어져야 했던 무게였습니다. 파트로클로스는 더는 싸울 수 없지만, 그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싸움은 오히려 더 치열해집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남은 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과 책임을 떠넘기는 것, 그것이 전쟁의 잔인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권을 덮으며


17권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옮기는 와중에도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의 추격이 계속되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한편 안틸로코스는 눈물을 흘리며 아킬레우스에게 달려갑니다. 이제 아킬레우스도 가장 가까운 전우의 죽음을 알게 됩니다.

참고자료: 호메로스, 《일리아스》, 이준석 옮김